조조의 진짜 무덤
중국 고대 삼국지 시절, 위나라의 시조이자 이 블로그의 마스코트라고도 할 수 있는 조조의 묘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이를 두고 진위논란이 계속 되고 있지만은 중국당국이 확인하였고 해당고분에는 조조의 부인 2명의 무덤도 함께 발견되었다는 것입니다.
조조는 죽기 전, 자신의 무덤이 도굴되는 일이 생길까봐 72개의 가짜 무덤을 만들란 유언을 남겼었는데 이것때문에 진짜 무덤의 위치는 1천8백여년간 확인되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다 2009년 12월, 중국 허낭성의 평원지대에서 이 고분이 발견되었고 무덤 발굴과정 중, 조조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고릉이 발견되어 연구 및 분석작업이 계속 되었으며, 발굴팀은 고릉주변 주요 구조 및 조조와 맏아들 조앙의 모친인 류씨, 조비와 조식의 모친인 변씨도 매장되었다는 결론을 내었습니다.
주묘 부근에선 작은 묘혈도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전쟁에서 전사하고 시신을 찾지못한 조조의 맏아들 조앙의 의관총이라고 합니다. 그 외에 맏아들 조앙의 모친 류씨와 조비 조식의 모친 변씨까지 모두 함께 매장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무덤의 구조와 소장품 등등 분석했고 남성의 유해가 1명 있었는데 60세 전후의 나이에 숨진 이 유해가 조조라고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조조는 220년 낙양에서 죽고 고릉에 묻히게 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데요 조조의 무덤이 발견이 되었고 조사해서 밝혀졌음에도 진위논란은 말끔히 해소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비석의 적힌 글씨가 현대와 비슷하고 조조가 생전에 사용하지 않았던 위무왕 명패가 드러난 점을 이상하게 생각하여 조작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쯤에서 전문가들이 왜 이 묘를 조조의 묘라고 확정할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1) 묘장의 규격이 한말 위진시기의 왕후급 묘장이며 이는 조조의 사망당시의 신분인 위왕(魏王)과 일치한다는 점입니다. 또한 기록에 의하면 봉토가 되어 있지 않다고 하였는데6, 이 무덤 역시 봉토(封土)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조조의 무덤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고대 묘라고 하면 어마어마하게 큰 크기를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사실 상당히 조그마합니다. 진시황묘는 어디까지나 예외입니다.^^
2) 무덤내 기물과 벽화등이 당시의 년대와 일치합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조조의 무덤이라는 확실한 증거는 되지 못합니다. 그냥 시대가 일치한다는 것뿐입니다.
3) 묘지의 위치가 사료나 노잠(鲁潜) 기록과 일치7합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정확한 위치라기 보다는 어디까지나 훗날 추정되는 위치이며, 상당히 넓은 지역이기에 정확한 증거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4) 조조 스스로 박장8을 명한 기록9이 있습니다. 해당 무덤의 기물 역시 왕급이라고 하기에는부족하다고 느껴지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조조의 무덤이라고 하기에는 정확한 증거가 아닙니다.
5) 무덤내 남성유골을 분석해본 결과 60세전후였습니다. 조조의 사망시 나이가 66세였던 것을 감안하면 근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이것이 조조의 무덤이 맞다면 이 유골은 바로 그 "조조"!! 인 것이지요. 그러나 이것도 정확한 증거는 아닙니다.
드디어 가장 정확한 증거입니다. 이것을 반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보입니다.
6) 무덤내에서 위무왕(魏武王)이라고 쓰여진10 돌위패(石牌)와 돌배게(石枕)을 발견했습니다.조조의 생전에는 우선 위공(魏公)으로 봉해졌다 다시 위왕(魏王)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죽은 뒤에 시호(谥号)로 무왕(武王)에 봉해집니다. 그리고 이후 조조의 아들인 조비(曹丕)가 황제가 되면서 조조을 무황제(武皇帝)로 높이게 됩니다. 그런데 석비에 쓰여진 것은 바로 조조의 사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에 불리던 무왕(武王)인 것입니다.